교회는 많은 커뮤니티, 특히 LGBTQ 커뮤니티(반드시 옹호자만 그런 것은 아 님)의 사람들에게 몇 가지 방식으로 상처를 입혔습니다.
우리는 그 사람들이 우리를 가장 필요로 할 때 “너희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죄에 빠져 있다”, “대체 왜 그래? 게이짓은 그만하면 안 돼?”라고 쉽게 충고했습 니다.
우리는 또한 동성애로부터 공개적으로 투쟁하는 자들의 간증에 더욱 귀를 기울이면서 은혜에 집중하고 함부로 판단하지 않으려 하는데에 실패했을 수 있 습니다. (더 많은 예를 알고 싶다면, 동성 끌림(SSA)을 경험하고 이에 대해 더 많 이 이야기할 수 있을 만큼 열려 있는 사람에게 물어볼 수 있습니다).
슬픈 점은 그들이 지도자/동료 크리스천에게 마음을 여는 매우 어려운 결정을 내릴 때 우 리는 종종 그들의 용기와 신뢰를 당연하게 여긴다는 것입니다.
우리가 그들이 느끼는 감정이나 왜 그렇게 느끼는지 먼저 듣지 않고 “세상 에서 게이가 사라지기를 기도”하거나 “막연히 그들이 동성애를 멈추도록 기도” 하려고 할 때, 우리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방식으로 그들을 사랑하지 못한 것 입니다.
상대방이 겪고 있는 일을 먼저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이해하려고 노력 하지도 않으면서 맹목적으로 누군가를 변화시키려고만 할 때 우리는 사랑한다 고 주장할 수 없습니다.
우리는 그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지 못했습니다. 영화 어벤저스 엔드게임 (Avengers End Game)의 하워드 스타크(Howard Stark)의 말을 인용합니다.
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면 그 부모는 자식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않습니다. 성적 투쟁은 종종 금기시되는 주제였으며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이 그 복잡성 때문에 그것을 피합니다. 우리는 성적 투쟁과 유혹 속에서 서로 함께 여행할 수 있도록 성에 대한
성경적 관점과 우리 자신의 이해를 구축하는 데 시간을 할애할 수 있 고 또 그래야만 합니다.
우리의 목표는 누군가가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, 동성애 끌림 을 경험하거나 다른 성적 유혹과 싸우고 있는 사랑하는 친구와 가족을 위해 최선(결과)을 원할 뿐입니다.
우리는 그들의 문제를 치료해야 하고 치료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쉽사리 ” 사역”에 뛰어들지는 못합니다. 물론 죄는 누구에게나 나쁜 것이지만 죄는 또한 우리 모두 안에 있는 타락하고 반역적인 본성의 산물입니다. 이 타락한 본성은 우리가 자기 중심적으로 서로를 다치게 할 때 우리 안에 그리고 우리를 통해 여 러 유형의 균열을 더 많이 만듭니다. 망가진 것은 복구해야 합니다.
하나님은 이 땅에 있는 그분의 아들딸들을 통해 초자연적으로나 자연적으로 치유하십니다. 하나님은 우리가 이해하거나 이해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그들을 돌보십니다. 우리는 그들의 구원자가 아닙니다. 하나님만이 그들의 삶에서 가장 깊은 상처를 치유하실 수 있습니다. (그분께서 우리 삶을 치유하시는 것처럼), 이 모든 것에서 우리의 역할은 서로 돕는 것입니다. 짐을 지고, 서로에게 가족이 되고, 그리 스도를 따르도록 서로 사랑하고 지지합니다.
하나님은 이 땅에 있는 그분의 아들딸들을 통해 초자연적으로나 자연적으로 치유하십니다. 하나님은 우리가 이해하거나 이해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그들을 돌보십니다. 우리는 그들의 구원자가 아닙니다. 하나님만이 그들의 삶에서 가장 깊은 상처를 치유하실 수 있습니다. (그분께서 우리 삶을 치유하시는 것처럼), 이 모든 것에서 우리의 역할은 서로 돕는 것입니다. 짐을 지고, 서로에게 가족이 되고, 그리 스도를 따르도록 서로 사랑하고 지지합니다.